Reactive Attachment Disorder
RAD
반응성 애착장애
악우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
안아 달라고 졸랐으면서 막상 진짜로 껴안으면 뿌리치고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 애가 아니라 사랑받던 자기 모습을 기억하는 애라서


쓰르라미 울 적에
와타나가시~메아카시 편이 곱씹으면 기억에 남는데 양심상 오니카쿠시쯤으로
악우랑 시안 중에 하나미자와 증후군 앓을 사람은 아무래도 시안이겠지 악우는 본래도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스트레스라곤 김영길 이활 밖에 없을 듯 그리고 만약에 정말 저들을 죽이려 들었다면 벌써 그러고도 남았을 건데 혐오하긴 해도 한 배 탄 오월동주니까 족치려고는 안 해서 이 점이 시안이랑 꽤나 다르지 시안은 하려야 할 수 없는 상태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 그러니 하나미자와 증후군 걸려도 시안이 대상일 성싶어
걸리면 갈수록 망상 심해져서 악우를 진짜 신 모시듯이 모실 것 같아 자기 멋대로 말 잘 들으면 원하는 대로 죽여주겠다고 약속한 걸로 아는데 실제로는 너랑은 하나도 안 어울리니까 하지 말라고 = 애먼 데 복수심 태우지 말고 지금처럼 성실히 재미없게 살아 했는데 중증 상태라 그걸 염원 이루어주겠다는 걸로 알아들어선 부담스러울만치 쫓아다녀 원래도 가끔 과장되게 행동한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뭐 정신 나간 놈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라서 어김없이 반걸음 뒤에 딱 달라붙어서 너 밖에 좀 나가 있어 나 그만 따라다니고 출근 안 해?
악우 님 전 정말 당신밖에 없어요 근데 문틈에 손가락 억척스럽게 욱여넣고 중얼대거든 악우 여기서 제법 놀랄 것 같아 문지방에도 발 걸쳐놨는데 세게 닫는답시고 힘줘서 문고리 당겼거든 찧여서 분명 아플 텐데 그런 기색이라곤 없이 음산하게 키득거려서 어디 아파? 사실 머리 어떻게 된 거냐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평상시에 이럴 여자가 아니니까 돌려서 물었는데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기뻐요 응, 조금 아파요 그러니까 열어 주세요 딱히 걱정스럽게 물은 것도 아니었는데 이게 뭐라고 감동에 겹다는 듯 확장되는 동공에 기시감 엄청 느껴 원래 이 정도로 들뜨게 반응하지 않았잖아 거기다 인내심은 어디 내놨는지 시건장치 의미 없이 눌렀다 떼면서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해 귀청에 철컥대는 반복음 남을 때마다 벌어졌던 입 다물리고 손아귀에 땀이 차올라 손, 힘 빼 빨개졌어 아, 그렇네요…… 계속 지켜보는 것처럼 눈을 떼지 않다가 딱 가리켜 지목하니까 그제야 손마디 빼내더니 열 올라서 부은 부위 뺨에 가져다 대곤 실실거리는데 연이은 해괴한 짓에 뭐가 재밌냐고 한마디 하려다 뜬금없이 들리는 쓰르라미 울음소리에 창가로 고개 돌려 저 벌레가 울 계절은 지났잖아 근데 지금 왜
잠깐 문 막던 데서 신경 끈 사이 몸으로 문 부딪혀서 확 들이닥쳐 등허리 찌르르하게 통증 올라오는 와중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바로 시선 올리면 새까만 눈으로 내려다보는 시안이 있어 악우 님 왜? 저 피하시는 거 아니죠? 안 피했어 피했어요 안 피했다니까 피하셨어요 안 피했다고 피했다고요 제 화에 못 이겨서 맨바닥 내려치는데 이쯤 되면 악우도 무슨 들짐승이라도 보는 듯이 응시해 미친 것 같아, 너 혼자 마룻바닥 긁어내리며 손톱 갈아내는 꼴 보고서 한 소린데 움찔하며 어깨 늘어뜨리더니 두 손으로 눈가 가리고 울기 시작해 따라갈 수 없는 사고에 이젠 육체를 떠나서 머리마저 저릿해지는 지경이라 등 뒤 짚어서 상체 일으키곤 일부러 쌀쌀맞게 굴어 우는 척하지 마 다 보여 지나쳐서 걸어가는데 안 붙잡길래 나가기 전에 슬쩍 뒤돌아보거든 그럼 손가락 마디 벌린 채로 눈 치켜뜬 채로 노려보고 있어
https://youtu.be/vOPqQ6-63v8?si=YPZv8SzkMT_evdkO
묶어도 묶어도 풀려선 바닥에 질질 끌리는 운동화끈을 매만지는 것처럼 악우의 손이 곧게 내려온 시안의 머리 줄기를 검지에 걸어 문질거리는데 수십 분째 이어지는 이 집요한 손길이 거슬리지도 않는지 한번 쳐내는 일 없이 가만히 받아들여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심심하니까 놀아 달라는 손장난이었어
기다려요, 잠깐만요, 곧 끝나요 아는 단어라곤 이 세 마디밖에 없는 앵무새 양 줄곧 똑같은 얘기를 읊는 입이 처음엔 짜증 났는데 거는 말이라면 족족 다 받아 주고, 이쪽으로 전혀 시선을 안 던지는 줄 알았더니 인상 펴요 정말로 얼마 안 남았어요 하고 악우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 잡아내는 꼼꼼함이 이내 입가에 호선을 그려내게 해서 못된 마음이 들다가도 스르륵 가라앉아서 빨리 애교 섞인 재촉을 했어
오랜만에 느껴보는 잔잔한 고요가 피부까지 닿아 오니 전날 잠을 설친 밤이 눈꺼풀에 내려앉았어 어느새 시안의 뒷덜미까지 뻗은 손길이 점차 속도를 늦춰 가고 덩달아 일정한 높낮이로 울리던 소리까지 멎어지면 관자놀이에 갖다 댄 주먹에 핏줄이 서 악우 님 나긋한 부름에도 한번 커튼을 친 속눈썹은 다시 들어 올려지지 않았어
부스럭대는 잡음이 귀에 포착될 때쯤 몽롱한 정신이 돌아올 텐데 눈을 뜨기에는 창창한 빛이 눈썹을 쪼아대서 바로 뜨진 못하고 콧살을 찌푸려 그러자 순간 늘 맡던 낯익은 향이 얼굴 앞까지 끼쳐오더니 이마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사라져 살과 살이 마찰해 생긴 작은 소리와 함께
이질적인 생동감에 눈언저리를 비비며 꿈벅거리는 시야를 다잡으면 좀 전까지 잠을 방해하던 햇빛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이 차지하고 있어 고개를 들면 잘 잤어요? 오늘에 들어선 처음 보는 보랏빛 눈이 이채를 띠고는 악우를 쳐다보고 있었어 …… 엄청 커졌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실없는 농담을 내뱉으니 전염된 듯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은 시안이 덜 깨셨네 악우가 그랬던 것처럼 곱실거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줬어 똑같이 거부하지 않으니 손마디가 뺨을 스쳐 귓가에 자리 잡았는데 별 다른 움직임이 없어 충동적인 행동이었는지 언뜻 머뭇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해서
해도 돼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면서 허락부터 하는 악우에 시안의 눈이 커졌어
그 눈을 망막에 가득 채운 악우가 허락이 떨어졌는데도 느적거리는 태도에 답답했는지 시안의 손등에 창백한 손이 겹쳤어 얼른 잡은 손을 옭아매듯 압박을 주니 귓불을 맴돌던 반대편 손이 서서히 내려오더니 입술 근처서 멈추고는 피딱지가 앉은 표면을 지그시 눌렀어 싸우지 좀 말아요 먼저 걸어오는 걸 어떡해 이번에도 이겼어요? 응 속상함이 어린 꾸짖음에도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기대감이 섞인 투로 받아치는 악우를 응시하던 시안이 상체를 굽히며 다물린 입술에 살며시 입을 갖다 붙였어 잘했어요 이어 멍이 거의 빠져 붉그스름해진 볼에도, 졸음이 완전히 달아난 속눈썹에도 시안의 일련의 행동들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던 악우가 턱 끝을 간지럽히는 손톱 끝 중 한마디를 그러쥐고는 물었어
아까 입 맞춘 거, 너였어? 네 왜? 당신이 너무 예쁘게 자길래 하고 싶어 졌어요 내가 예뻐? 네 예쁘면 막 손대나 보네 ……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한테만 그런 거예요 나한테만? 네, 당신한테만 나 방금이 처음이었는데 책임져 줄 거야?
나무라는 것이 아닌 어르듯 조곤조곤 물은 악우가 손깍지를 끼더니 흔들어 보였어 근데…… 본 거랑 다르네 어떤 게요? 좀 길게 하던데 이렇게 짧게 하는 게 아니라 그건 키스예요 방금 건 뭐였는데? …… 뽀뽀? 그래?
정확히 짚어서 대답해 주어야지만 만족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에 아는 대로 실토했는데 갑자기 시야가 어그러지더니 천장이 목전에 다가왔어 발이 공중에 뜨는 걸로 봐선 책상 위인 것 같은데 엎어진 충격으로 인해 아파야 할 뒤통수에선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머리통을 감싼 손목에서 미약하게 널뛰는 맥만이 통감 돼서 눈동자를 또륵 굴리니 의미심장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악우와 시선이 맞물려 너무 재미없게 군다, 너 상을 짚은 악우의 팔이 비스듬히 꺾여 들어가더니 눈높이가 맞아졌어 해도 된다고 했잖아 느슨한 미소가 걸린 얼굴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얼빠진 소리가 밑에서 흘러나오자 표정이 풀리고 추궁하려던 생각이 비 온 뒤 개는 구름처럼 걷혔어 하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눈썹을 찌그린 채 한풀 꺾여 웃는 악우를 빤히 쳐다보던 시안은 가슴이 간질거리고 한편으로는 아릿해서 손끝을 오므렸어 비웃는 건 숱하게 봤지만 이렇게 웃는 건 낯설어서 올려다보고만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 건지 이마까지 입술을 바짝 붙였다 떼낸 악우가 흡족하다듯이
내 처음을 줄게
이번만 특별히
일단 악우 교복차림이라 카운터서 시안이 원*교* 녀로 오해받을 뻔했다가 남자애 무심한 태도 보고 가출 청소년 돌봐주는 누나로 바뀌어 그러고 뭐 차례로 씻고 배달시키는데 시안이 대신 주문해 준 적 빼고 직접 시키는 게 이번이 처음인 데다 남자애도 문외한이라 이걸로 몇십 분 잡아먹은 뒤 음식 기다리는 동안 티브이 트는데 마침 예전에 악우가 누나랑 같이 봤던 뱀파이어 영화가 나와 그런데 하필 장면이 딱 키스신 때라서 시안이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좀 놀랐는데 정작 옆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쟤들 저러고 싸워 스포일러나 읊어서 그렇군요….
클라이맥스 형이 동생 죽이는 신에선 시안이 청소년이 볼만한 내용은 아니네요 장난스럽게 대꾸하면 여기에 꼬맹이가 어디 있는데? 기분 탓인지 뭔가 말에 가시가 돋쳤길래 시선 돌리면 불만스러운 건지, 짜증이 난 건지 아님 그 중간인지 아무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악우 있어 그럼 아이 취급해서 화가 난 건가 싶어서 사과하려 하면 한 발 앞선 악우가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아, 제대로 화났다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눈이 진짜 살벌해서 급격히 마음 복잡해져 근데 이 정도는 받아 주던 사람인데 어디에서 핀트가 나간 건지 열심히 머리 굴리면
설마 성적인 농담으로 알아들었나? 가 도출 돼
아까 키스신 이후로 대화가 끊기다시피 해서 정말 한참 뒤에 꺼낸 주제였는데 저 한마디를 이어지는 대꾸로 들었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 거지
무거워지는 분위기 무마해 보려 시안이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서 카운터서 안내해 준 칸 뒤져서 간식 찾는데 과자는 어디 가고 손끝에 걸리는 ㅋㄷ에 재빨리 서랍 닫아 한데 어느새 뒤에 다가붙은 악우가 다시 서랍 확 열어젖혀서 말짱 도루묵 되고 보여선 안 될 그것이 반동으로 공중에 잠깐 들어 올려졌다가 힘 없이 툭 떨어져 … 하 등 바로 뒤에서 느슨하게 웃는 소리에 이어 그새 침대에 앉았는지 용수철 튕기는 소리도 같이 귀에 꽂혀 표정 좀 풀지? 어차피 안 쓸 건데
https://youtu.be/z1Ci3DSPs0s?si=Bp_wCrOTVruXKjj6
악우가 시안이 활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로 오해하면 좋겠어 맨 처음엔 아무 사이 아닌 거 알았지 시안이가 활한테만큼은 그렇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 거 봤었으니까 근데 연초나 연말만 되면 연락은 고사하고 보러 오지도 않거든 그때마다 가끔 전화 오면 한다는 소리가 사자님 일을 인수받았어요 부서인가 뭐 그런 거 다르다며 청사 일이 아니고 설화계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하는데? 불만스럽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아 참견할 사이도 아닐뿐더러 이제 와서 잔말 남기는 거 좀 멋없잖아
얼마나 시키는 거야? 조금 오래 있을 거니까 준비차원이죠 그리고 금방 드시잖아요 뚱한 얼굴로 물어도 익숙하다는 듯 미소로 응수해서 눈썹 더 찌푸려져 또 익숙하게 노트북 꺼내서 일부터 처리하려는 점이나 알면서 굳이 따라 와서 앞자리 꿰차고 있는 저나 죄다 마음에 안 드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별로인 건 얘가 고르는 케이크는 전부 더럽게 맛있다는 거 정작 자기는 이런 거 한입도 안 대면서 메뉴는 모조리 꿰차고 있는 게 흐응, 많이 와 봤나 봐 엄청 잘 아네 아, 뭐…… 사자님이랑 몇 번? 자격자 님도 지금 드시는 거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괜찮죠? 노트북 각도 살짝 내려서 힐끔 쳐다보는데 시선이 손끝에 가 있어 그래서 케이크 시트를 짓이기는 못된 손장난을 쳐서 눈 동그랗게 뜨게 만들어 버려 별로예요? 아니, 좋아
인터넷 잘 안 하거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도 거의 없고 그냥 연락 오면 어쩌다 한 번씩
누나한테 연락 좀 자주 하라고 기분 나쁘지 않은 쓴소리 들은 뒤로는 먼저 전화 거는 법이 늘어서 휴대폰을 잡고 있는 시간이 그나마 늘었는데 통화를 끊고 나면 또 적적하고 심심해 그래서 요즘 따라 마음에 안 드는 여자 연락처를 괜스레 찾아 눌러 봐 원래도 귀찮게 구는 법이 없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 정도로 관심도, 발걸음도 멀어지라는 건 아니었는데
아, 악우 님 죄송해요 지금 좀 정신없어서…… 아니라니까요, 정말
제가 나중에 연락할게요, 미안해요
모처럼만에 먼저 걸어봤는데 대뜸 통화 확 끊어버려서 기분 밑바닥 쳐 신경질적으로 머리칼 흐트리는데 불현듯 소음 너머로 비집고 들어온 목소리가 뇌리에 스쳤어 포털사이트가 난리났다는 말
바로 웹 브라우저 켜면 뉴스가 대문짝 하게 뜨거든 대충 눈으로 쫓으니 예전에 좀 생겼다고 난리났던 보좌관이 시청 내 누군가와 염문이 났다는 뜬소문과 다름 없는 가쉽거리에 한숨 내쉬어 인간들은 정말 이런 쓸데없는 걸 좋아한다 싶다가도 설마 S 양이라는 게 그 여자인가?
너 진짜 보는 눈 없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양 눈 끔뻑이면서 되물어서 미세하게 미간 일그러트리고는 숨 들이켜 왜 하필 그 자식인데? 뭐가요?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아까부터 무슨 얘길 하시는 거예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얼빠진 표정으로 묻기만 하니 입매가 비틀려 저 순진한 얼굴을 삐뚤어지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에 다시 입 열려고 할 때, 사자님이라면 아무 사이 아니에요 그냥 악귀 일로 최근에 붙어 다니게 된 게 전부인데 그걸로 악의적인 소문이 퍼진 거고…… 무엇보다 제 타입 아니에요, 사자님은
그럼 어떤 타입이 좋은데?
제멋대로에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서도 은근 세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좋아요 가진 적 없거든 으음, 그래요? 그냥 어쩌다 보게 된 것뿐이야 그래서 아직도 보는 눈 없어 보여요? 응, 최악이야
쌀쌀맞은 대꾸였지만 입꼬리가 어느새 올라가 있어서 그 미소를 확인한 여자도 덩달아 같이 웃어 버리고 말아
언제 악우가 시안이 직장에 한 번쯤은 놀러 가 줬으면 좋겠어 어쩐 일이냐고 물으면 남 일 시키는 데는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러 식에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그런데 막상 가도 주무관 님 업무가 아직 안 끝나셔서요 답만 듣게 돼 하지만 아랑곳 않고 그럼 기다릴게요 진짜 멀대같이 서서 기다려
연일 철야로 죽을 지경인 상황에서 직원들이 갑자기 민원실 앞에 웬 소원고 교복 입은 아이돌 연습생 같이 생긴 애가 있다면서 떠들썩해지고 보러 가자고 해 근데 그 아이돌 때문에 공식 사이트 먹통 되고 안내문까지 만들어 하는 통에 할 일이 배가 됐으니 됐어요 손사래 쳐
좀 잠잠해졌다 싶을 때쯤 유인물 복사해서 민원실에 전달해 주려 갔는데 민원인들로 붐벼서 안내원한테 넘겨 주고 가야겠다 싶을 때 마침 딱 시야에 걸리는 게 교복 입은 소년인데 순간 눈이 커져 아이돌 연습생의 정체가 너무 익숙한 사람이라서 그러고 누구랑 대화를 한다기보단 일방적으로 말이 걸린 것 같은 모양새에 슬쩍 표정을 올려다보니 오늘도 상당한 저기압이라서 작게 숨 내쉬고는 거리를 좁히는데 잡지에서 봤어요, 그 엠지 고등학생! 아, 뭐…… 얼결에 엿듣게 된 내용이 예전에 자격자 부탁으로 모델 대타를 뛰었다가 잡지 표지로 나가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일 탓에 사람들이 알아보던 거였어 연예인이에요? 아님 연습생? 좀 알려 줘요 보통 같으면 말 걸어도 무시하고 갈길 갈 텐데 하필이면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건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거리 둔 채로 서은한 씨 부르면 남자애랑 그 아래에 여자아이도 같이 고개 돌아가면서 시선 한 몸에 받게 되거든 그럼 갑자기 아는 누나가 불러서요
아는 누나가 뭐예요, 아는 누나가…….
그러는 너는 씨는 왜 붙여? 소름 끼치게
밖에서 악우 님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차라리 그러지
정말…….
나란히 휴게실 의자에 걸터앉아서는 좀 전에 일을 곱씹어 제법 오랜만에 마주친 건데도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초조했는데 눈초리들이 사라지고나서야 씩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놓여서 똑같이 가볍게 미소 지어 주는데 표정 묘해지더니 돌연 시선 피해
진짜 요즘 고딩 마음 알 길이 없다…… 속으로 되짚으면서 어색하게 테이블에 굳은 물자국 물티슈 뽑아서 닦고나 있는데 너 또 나 꼬맹이 취급했지? 어느새 콧대가 문질러질 거리까지 얼굴 들이밀어서 아니에요 아니긴…… 이번엔 반대로 먼저 고개를 돌려버리니까 그제야 멀어져 이윽고 잠깐 적적한 침묵이 내려앉아 그에 어떻게 말을 이으려던 차에 갈게 아, 가신다고요? 왜? 더 있었으면 좋겠어? 장난기가 담긴 입꼬리에 저도 모르게 그렇다고 헛말 나올 뻔한 거 다시 쏙 들어갈 거야 데려다 드릴게요 됐어, 내가 애야? 애 맞잖아요 뭐?
교복 입었으니까 하
황당하다는 게 역력한 빛이 얼굴에 얼핏 스쳐 지나가 마음대로 해 하지만 언제나처럼 두 번은 거절하지 않아
전 남친 토스트
악우 저택에서 차려주는 상 쳐다도 안 보니까 뭐라도 먹이고 싶어 타협점을 찾은 게 전 남친 토스트 만드는 게 간단한 것도 고른 이유기도 해서 금방 싸서 다음 날 저지방 우유랑 갖다 주면 블루베리 잼이 좀 시잖아 한 입 베어 물더니 미간 서서히 좁혀지는 거야 근데 뒤에서 크림치즈가 그 시큼한 맛 감싸주고 감미 올라오니 팽팽하게 펴져 원래도 음식에 평가를 내리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아서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펴야 상 중 하 알 수 있거든 보아하니 이번에는 상이야 입꼬리가 꿈틀거렸으니까 이후로 한동안 시청 일로 정신없어지니 신경 쓸 짬이 사라져서 식사를 챙겨 주지 못하게 되는데 뜬금없이 점심시간에 전화 와서는 있잖아 네 그거 어디서 팔아? 그거? 식빵에 잼 바른 거 아 전 남친 토스트요? 뭐? 그 토스트 이름이 전 남친 토스트예요 왜 전 남친인데? 전 남친이 알려 줘서 전 남친 토스트래요 아 그래 마뜩잖다는 심통 찬 목소리로 통화 확 끊어버려서 꺼진 화면 물끄러미 내려다봐 왜 삐졌지
맨 처음에 이름 알려 주기 싫어해서 호칭 정착이 안 되니까 이것저것 다 불러봐 아이야, 얘로 번갈아 지칭하니 돌아보는 시늉도 안 하는 거야 나중에서야 자기 부른 게 아니니까 대답할 필요 없어 보여서 안 했다고 하는데 그럼 소도에 당신이랑 나 단둘만 있는데 누굴 부른 거겠나 싶지만 떨떠름하게 알았다고 수긍해
악우는 성질 안 건드리면 얌전해서 느긋한 게 성정상 맞는데 주변에서 가만 안 두니 예민한 부분이 뾰족하게 갈린 거라 계속 사포로 문지르면 뭉툭하게 변할 거야
악우도 인간의 육체여서 심장 찔리거나 멈추면 죽는데 평소에 자살 기도 좀 하는 편이라서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시안은 그게 매번 두려워 자기는 살려준 목숨이라고 잘 쓰고 아끼려고 하는데 정작 내려준 사람은 몸 막 쓰는 데다 내일이 오건 말건 하는 태도니까 도리어 햇귀가 뜨는 것부터가 싫은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 주었으면 해서 계속 붙들고 있는데 악우 님 스스로 감당 못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릴 때 있단 말이야 몸이 쑤시는 건 진통제 먹고 견딜 수 있어도 골을 울리는 기억들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반사적으로 머리 쥐어뜯는데 한 움큼 나온 머리카락 보고 호흡이 이상하게 진정 돼 그렇게 점점 더 증상이 악화될 것 같아 보통 패싸움할 때 덤벼들면 피했는데 일부러 더 맞아 줘서 코피 질질 흘리는데 눈앞이 뿌옇게 물들고 열이 끓어오르는 게 끝내주게 기분이 좋아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생동감을 즐기겠지 과각성 상태에 들어선 건데 숨을 뱉을수록 헛웃음이 실실 새어 나와서 괜히 피멍 든 손목 내려다볼 것 같아 핏줄이 꿈틀거리는 야릇한 통각에 주위에 뒹굴던 돌멩이 집어서 그대로 찍으려 할 때 누가 손등 바닥으로 내치는데 멍하게 올려다보면 익숙한 체취가 훅 끼칠 것 같지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시야 맑아지면서 회보랏빛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리는데 떠는 건지 어깨가 움찔거려 그에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서 뒷덜미 콱 움켜쥐고 힘 싣는데 엄청 흔들리는 목소리로*그만해요 웅얼거려서*울어?
인해초에 의존 심할 것 같아 열 펄펄 끓을 때면 인해초 찾는데 마약 진통제라서 다소 중독 증세 보일 것 같지 저택에 제 발로 들어올 때도 인해초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저택뿐이니까 오는 건데 횟수가 자꾸만 늘어가니까 저택에 신도들이 만류하지만 들을 턱이 없지 그래서 설화계인들이 시안에게 부탁해서 말리게 할 것 같은데 그나마 말 들어줘서 일주일에 세 번 찾던 거 두 번 찾기로 줄이거든 하지만 무분별하게 마시다 보니 중독된 지 꽤 돼서 가뜩이나 서슬 퍼런 안색이 더 허옇게 질린 채로 온종일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을 거야 상태 안 좋아 보여서 대개 흑심이지만 그 속에 호의도 있어 그렇지만 챙겨 주려고 하면 꺼지라고만 하고 신경질 부려서 다들 눈밖에 나기 싫으니 그 이상 간섭하지 않아
잠은 자기 싫어 악몽을 꾸니까 이 상태에서 꿈속에 그 여자를 본다면 싹 다 죽여버리고 싶을 테니 뜬 눈으로 밤 지새우다 누나한테 전화 오면 목소리 겨우 쥐어짜서 통화하며 고민 상담해 줘 대화 끝자락에 또 전화하라며 응수하지만 끊자마자 지쳐 쓰러져선 수마에 빠져들어
눈꺼풀 들어 올렸을 땐 침대 위고, 귓가에 일정한 숨소리와 팔뚝 근처에선 심장의 뜀박질을 느껴져 그에 고개 돌리면 아주 평온한 얼굴로 꿈나라 헤매는 얼굴 시야에 드리우는데 머리카락이 콧등에 올라탄 거 보고선 반사적으로 손 뻗으며 밀쳐서 아래로 고꾸라지게 해 억지로 깨우는 심술을 부릴지 그냥 얌전히 재워둘지 일순 고민하는데 그냥 머리칼 넘겨주는 걸로 끝낼 것 같아*자는 거 오랜만에 보네 혀가 텁텁해서 중얼거려 서서히 움직이려고 팔부터 꼼지락대면 손아귀에 손목 잡혀서 이번엔 눈을 내리깔아 맥 없는 손 이불에서 건져내면 붉게 손자국이 남아 있어서 헛웃음 터뜨려